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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멘델스존

한여름밤의 꿈을 들려주는 낭만주의자 멘델스존 #11

by salarygoodbye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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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은 19세기 낭만파 시대를 통틀어 슈베르트와 함께 천재 작곡가로 꼽히는

유대계의 작곡가 겸 지휘자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고전주의 성향을 보였던 바흐, 헨델, 모짜르트, 베토벤의

후계자였다   

 

부족함 없었던 어린 시절과 음악 공부

멘델스존의 생애는 다른 음악가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좌절과 고통 또는 스캔들 등을 동반하고 있는데  반에 멘델스존은 부드러움과 균형을 보여주는

그의 음악처럼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한 작곡가였다

 

멘델스존은 신의 축복을 받았다 해도 좋을 정도로 여러 방면으로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작곡, 지휘는 물론 피아노, 오르간 연주에도 그 당대 명인의 반열에 들 정도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춤, 승마, 수영, 당구, 장기, 그림 그리기에도 능했고 6개 언어도 구사했으며 철학, 문학, 역사에도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그의 재능은 곧 주위의 시선을 끌었으며 그것은 길지 않은 활동 기간 동안 빛나는 업적을 쌓는 원동력이 되었다

 

멘델스존은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부유한 유대계 은행과 아들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에서 인텔리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그래서인지 모난 데라곤 없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의 천재성은 아홉 살 때 부터 발휘되어,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으며 13살에  대곡을 작곡 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가장 존경했던 음악가는 바흐였다

 

 

마태 수난곡의복원

그리하여  당시 최후의 작가였던 괴테는 바흐의 작품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주하는이 소년에게 반하여 이후로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많은 유명인사들과 함께 음악회를 열었다고 한다

멘델스존은 이곳에서 많은 철학자들과 교분을 나눌 수 있었으며 16세가 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지를 여행하며 유럽의 음악가들 과의 만남을 통해 적극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

16세에 이미 현황 8중주를 이끄는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1829년 3월 11일에 바흐의< 마태 수난곡>의

복원 연주를 지휘하게 되었는데  이 연주는 그에게 최대의 명성을 안겨주는 사건이 되었다

 

이 연주는 그동안 묻혀 있던 바흐의 작품을 무덤 속에서 되살려냈다는 측면에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이 되었다

1835년 멘델스존은 26살의 나이에 라이프치히의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다양하고 정열적인 음악 활동을 펼쳤으며 게반트하우스는 곧 유럽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이렇게 천재 음악가로서 착실하게 활동하는  한편 그의 가정 생활도 극히  원만했다

 

그는 다른 음악가들처럼 스캔들을 일으키는 일도 없었으며 28살에 "세실장 르노"를 만나 결혼하고   4 의 자녀를 두었다

이렇듯 행복과 명성, 부를 모두 누리던 멘델스존은 어려서부터 가장 사랑했던 누이 파니 사망 소식에 너무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쇠약해졌다

또는 너무 무리한 연주 여행으로 건강을 해쳐 스위스에서 요양을 해야 했으며 결국 누이가 떠난지 5개월 뒤 1840년 11월 라이프치히 자택에서 평온한 삶을 마무리했다

 

주요작품

멘델스존의 음악은 한마디로 탄탄한 구조 아래 자유롭고 유창하며 환상적인 낭만성을 극명하게 표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와 4번 <이탈리아>,  극음악<한여름 밤의 꿈>,  피아노 협주곡 1번 2번, 

한 편의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삼성 3중주곡 1번 <무언가>48곡,  오라토리오 <엘리야>,  <성바울로>,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 >등 거의 전 음악 장르에 걸쳐 주옥 같은 작품들이 많이 있다

 

 

 

 

 

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