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는 유럽 전역을 석권한 낭만파 시대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물 설정, 묘사, 멜로디 구성에서 독보적인 천재성을 보였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미래를 밝힌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년 로시니
베토벤은 그의 오페라가 가볍다고 싫어했지만, 로시니의 오페라는 유쾌하고 육감적이며 매력적인 선율과 리듬으로 당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로시니는 관악기 주자인 아버지와 소프라노 어머니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14세에 첫 오페라를 작곡했고, 1810년에 초연한 오페라 부파 <결혼 보증서>가 성공을 거두면서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로시니는 1829년까지 약 20년 동안 수많은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24세 때 13일 만에 완성한 작품으로, "나는 이 작품을 13일 만에 완성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말했다.
결혼과 유럽 여행
1822년, 스페인 출신의 유명 성악가 이사벨라 콜브란과 결혼했다. 신혼여행으로 유럽의 음악 중심지 빈을 방문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빈에서 베토벤을 만나 통역을 통해 대화했는데, 베토벤은 로시니에게 "앞으로도 계속 희가극만 쓰세요. 다른 장르의 오페라는 당신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충고했다. 이후 로시니의 명성은 전 유럽으로 퍼졌다.
마지막 오페라와 은퇴
1829년 <빌헬름 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다. 이후 약 30년간 로시니는 가곡과 피아노 곡만을 작곡하며 작품 활동을 마무리했다.
미식가 로시니
로시니는 오페라 작곡을 그만둔 이유로 "오페라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더 즐겁기 때문"이라는 농담을 했지만, 이는 완전히 농담만은 아니었다. 그는 낙천적인 미식가로, 요리와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불룩하고 뚱뚱한 초상화를 통해서도 그의 미식가적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대표작: <세빌리아의 이발사>
로시니의 대표작인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1816년에 작곡된 작품으로, 프랑스 작가 보마르셰의 희곡 3부작 중 하나를 스테르비니가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작성하고, 로시니가 13일 만에 곡을 붙였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오페라 사상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중 하나로, 완벽한 구성과 경쾌하고 생생한 선율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