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은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이 영화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베니스의 황혼 속에서 펼쳐지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말러의 음악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영화는 관객에게 깊은 사색의 여지를 남긴다.
줄거리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1911년, 독일의 저명한 작곡가 구스타프 아센바흐(더크 보가드 분)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베니스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예술적 영감을 찾으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도시의 축축한 기운과 고립된 분위기 속에서 점차 무력감을 느낀다. 호텔에서 그는 타치오(비에른 안드레센 분)라는 아름다운 소년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완벽한 외모에 매료된다. 타치오에 대한 강렬한 매혹은 점점 집착으로 변하며, 아센바흐는 그를 따라다니며 거리를 헤매고, 소년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게 된다.
그러나 베니스는 병든 도시였다. 콜레라가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 숨겨진 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죽어간다. 아센바흐도 이 도시에서 서서히 병들어 가며, 자신의 삶과 예술, 그리고 타치오에 대한 집착이 불가피한 파멸로 이끌리는 과정을 지켜본다. 결국 그는 베니스의 해변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하며, 그의 마지막 순간은 말러의 교향곡 5번이 흐르는 가운데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말러의 교향곡 5번: 음악 속에 담긴 상징과 감정의 깊이
말러의 교향곡 5번은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감정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다. 이 교향곡은 아센바흐의 내적 갈등과 황혼기의 베니스가 지닌 병든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영화의 정서적 깊이를 더해준다. 특히, 교향곡 5번의 4악장인 아다지에토는 사랑과 상실, 죽음에 대한 서정적인 표현으로, 아센바흐가 타치오에 대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화 내내 흐르는 이 음악은 아센바흐의 감정 상태를 반영하며, 그의 삶이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말러의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아센바흐의 정신적 여정과 베니스의 몰락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음악은 아센바흐가 예술을 통해 찾으려 했던 이상이 결국에는 파멸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의 집착이 어떻게 그의 죽음을 불러오는지에 대한 서사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비스콘티 감독의 의도: 예술과 파멸의 교차점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통해 예술과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 끝에 닥치는 파멸을 탐구하고자 했다. 구스타프 아센바흐의 캐릭터는 예술적 완벽을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본능적 욕망과 충돌하게 된다. 베니스는 이 충돌의 배경으로,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부패와 파괴를 상징한다. 감독은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사용하여 이러한 주제를 더욱 극적으로 강조했다.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영화의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며, 아센바흐의 감정적 파열을 음울하게 표현한다. 비스콘티는 이 곡을 통해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과, 그가 추구했던 예술적 이상이 어떻게 그의 파멸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 음악은 아센바흐의 내면과 베니스의 병든 상태를 반영하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의 감정에 깊이 스며든다.
결국,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예술의 이상과 현실의 불완전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말러의 교향곡 5번은 이 갈등의 상징적 표현으로 사용된다. 비스콘티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이 가진 치명적인 매력을 탐구하고, 그 끝에 기다리는 파멸의 가능성을 묘사했다. 말러의 음악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감정의 배경이 아닌,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적 요소로 자리하며, 아센바흐의 마지막 순간을 더욱 비극적이고 잊을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