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olfgang Amadeus Mozart ](1756년 ~ 1791년)
세 살 때 이미 신동이라 불렸고, 5살 때 작곡을 했으며 7살 때 바이올린 소나타를, 8살 때는 교향곡을 그리고 12살에는 오페라까지 작곡한 모차르트 는 괴테의 표현대로 능력을 간음할 길이 없는 그야말로 천재 중에 천재 작곡가였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대의 축복이라 말하기도 한다
신동의 유럽 여행
1756년 1월 27일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피아노 연주 실력이 놀라웠으며
작곡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그는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뮌헨과 빈, 파리, 런던 등 유럽 각지를 돌며 각국의 음악적 특징들을 두루 체험하게 되었으며 이 모든 것들을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것으로 만들어 결국 고전파 시대의 음악적 결정을 이루어냈다
15살의 모차르트를 가르쳤던 하이든도” 나는 더 이상이 천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가 없다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정도이다”.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작곡가라며 찬탄했다고 한다
6살에 오스트리아 빈이 궁정에서 <마리아 테레지아>여제 앞에서 뛰어난 연주 실력을 보여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으며, 14살 때는 로마 교황청 바티칸 궁정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딱 한 번 듣고 나서 10여분짜리 합창곡을 기억만으로 정확히 사보해 낼 정도로 뛰어난 천재성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잘츠부르크의 청년 음악가
청년으로 성장한 모차르트는 가극 <마탄의 사수>를 작곡한 베버의 조카딸 <알로이자 베버>를 만하임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사랑에 실패하고 파리로 건너가 보지만, 신동 모차르트를 열렬히 환영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파리에 대중들은 이제 청년 모차르트에 대해서는 별 흥미를 보여 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모차르트는 경제적, 정신적으로 말할 수없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돌아가가시게 되자 고향인을 집으로 돌아오게된다
고향에서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이탈리아 음악의 심취해 있던 잘즈부르크의 대주교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과소평가했으며 그로 인한 대주교와의 불화가 끊이지 않자 모차르트는 결국 궁정 음악가 자리를 사임하고 쫓기듯이 빈으로 건너간다
빈에서 새로운 생활을 모색하던 모차르트는 알로이자의 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여 음악을 가르치거나 곡을 만들어 주면서 가정을 꾸려 나간다
음악 외에는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잠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화려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경제적으로는 너무 궁핍했으며 친구들도 모두 그에게 등을 돌리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또한 모차르트의 음악적 천재성을 시기한 이탈리아 작곡가 살리에르의 중상 모력과 방해로 빈에서의 생활도 평탄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