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 작품 중 하나인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은 1786년에 작곡된 이후로 오페라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탈리아어로 된 이 오페라는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의 희극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 1778년)**에 기초한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보마르셰의 원작은 상류 계층을 조롱하는 내용 때문에 빈에서 금지되었으나,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성공을 거두며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작품 배경 및 초연
이 작품은 모차르트와 다 폰테의 첫 공동 작품으로, 1786년 5월 1일, 빈의 부르크 극장(Burgtheater)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다 폰테는 원작에서 풍자적 요소를 제외하고, 당시 오페라에서 주로 사용되던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번역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이탈리아 부파 오페라들은 흔히 비극적인 사랑 삼각관계를 다루기보다는, 여러 인물들의 엉터리 같은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 역시 다양한 주연 배우들이 출연하며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주요 배역
알마비바 백작 (The Count Almaviva): 바리톤, 수잔나에게 치근덕대는 인물
알마비바 백작부인 (The Countess Almaviva): 소프라노, 로지나
피가로 (Figaro): 바리톤, 세빌리아의 이발사이자 백작의 하인
수잔나 (Susanna): 소프라노, 피가로의 연인, 백작부인의 하녀
케루비노 (Cherubino): 메조 소프라노, 백작의 어린 시종, 백작부인을 연모하는 인물
줄거리
1막
오페라는 중앙에 의자가 있는 방에서 시작됩니다. 피가로는 신부 침대가 들어갈 공간을 측정하며 즐겁게 노래하고, 수잔나는 거울 앞에서 웨딩 보닛을 써봅니다. (듀엣: "Cinque, dieci, venti" – "5, 10, 20") 피가로는 새 방에 만족하지만, 수잔나는 백작이 그녀에게 접근하려는 의도를 의심합니다. 백작은 로지나와 결혼할 때 폐지된 드로트 뒤 시뇨르를 되찾고자 하며, 이를 위해 피가로의 방을 그녀의 방 근처로 배치합니다. 피가로는 백작을 따돌리기로 결심합니다. (카바티나: "Se vuol ballare signor contino" – "춤추고 싶다면, 백작님") 바르톨로 박사와 그의 옛 가정부 마르첼리나가 도착하여 피가로에게 빚을 갚지 않으면 결혼하겠다는 계약을 상기시킵니다. 수잔나와 마르첼리나의 정중한 비꼬는 말다툼이 이어지며,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여러 음모가 벌어집니다.
2막
알마비바 백작부인은 남편의 불륜을 한탄하며 슬퍼합니다. 피가로는 간음꾼을 경고하는 편지를 보내 백작의 주의를 분산시키려 합니다. 케루비노가 등장해 백작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백작에게서 숨습니다. 백작이 방으로 들어와 의자 뒤에 숨은 케루비노를 발견하려 하지만, 여러 번의 숨바꼭질 끝에 케루비노는 창문을 통해 탈출합니다.
3막
백작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숙고합니다. 수잔나는 백작에게 거짓 약속을 하고, 피가로는 마르첼리나와의 결혼을 강요받습니다. 피가로는 부모의 허락 없이는 결혼할 수 없다며 자신이 바르톨로와 마르첼리나의 아들임을 밝혀냅니다. 이어서 마르첼리나와 바르톨로는 결혼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백작부인은 수잔나와 백작의 만남을 계획하며, 편지를 통해 백작에게 소나무 아래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4막
정원에서 바르바리나는 백작의 핀을 잃어버립니다. 피가로는 수잔나가 백작을 몰래 만난다고 오해하여 질투에 휩싸입니다. 수잔나는 피가로를 속이고, 피가로는 그녀를 알아본 후 화해합니다. 백작은 "수잔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가 실제로는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모든 오해가 풀리고, 피가로와 수잔나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결론 및 의견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초야권권을 행사하려는 알바비라 백작과 이을 저지하려는 하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백작은 결국 하인들에게 굴복하고 여러 사람들한테 망신만 당하고 만다는 것이 이 오페라의 결말이다.
모차르트는 세상살이의 원리를 분명히 꿰뚫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요세프 2세가 통치하던 비인 당국으로부터 공연을 허가받기 위해 노골적인 사회 비판적 내용을 최대한 줄이는 대신 복잡하게 얽힌 사랑의 관계 속에서 미묘한 심리를 포착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백작으로 대변되는 귀족 사회의 추잡한 욕망과 피가로로 대변되는 낮은 계급의 분노는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사랑과 화해의 합창을 통해 잔잔하게 용해 된다. 평화로운 화해의 메시지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한 수 배우게 되는 산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