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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바그너

'나쁜남자'의 상징 바그너, 예술에선 개척자

by salarygoodbye 202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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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왜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지 궁금하지? 어떤 사람들은 여성이 본능적으로 강한 유전자를 가진 남성에게 끌린다고 해. 동물 세계에서 강한 자가 남을 괴롭히는 건 특권이니까. 또 다른 사람들은 금지된 것을 향한 갈망 때문이라고 말해. 가지기 힘들수록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거지. 모성 본능이 강한 여성들이 나쁜 남자를 자신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는 주장도 있어.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리 나쁜 짓만 하고 무례한 사람이라도 사랑받는 경우가 있다는 게 참 신기해.

 

 

 

 

 

바그너-_코지마
바그너와코지마

                                                                                          

 

리하르트 바그너는 1813년에 태어나서 1883년에 세상을 떠난 독일의 작곡가야. 바그너는 오페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혁신가로, 그의 작품들은 주로 극적이고 대규모인 오페라였어. '니벨룽의 반지', '트리스탄과 이졸데', '탄호이저'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어.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극의 모든 요소를 통합하려는 '총체예술작품(Gesamtkunstwerk)' 개념을 도입했어.

 

바그너의 인생에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코지마 리스트야.

그의 동지이자 은인이었던 리스트의 큰딸 코지마와의 불륜이야. 이들의 관계는 코지마가 리스트의 애제자인 한스 폰 뷜러와 결혼해 신혼여행을 가는 길에 아버지의 지인인 바그너를 방문하면서 시작되는데.

젊은 그녀와 관계를 지속하고 싶었던 바그너는 남편인 뷜러를 자기 오페라 공연의 지휘자로 캐스팅해서 이 부부를 뮌헨으로 불러들였고, 코지마가 자기 자서전을 위한 구술을 받아 적어야 한다며 아예 자기와 같은 빌라에 살도록 했어. 코지마는 바그너에게 큰 위안을 받았는지. 1866년에 코지마는 뷜로와 이혼하고, 1870년에 바그너와 결혼하게 돼. 그들은 바그너의 집인 바이로이트에서 함께 살며,

코지마는 바그너와 사이에서 두 딸과 아들을 차례로 출산했고, 아이들의 이름을 바그너 오페라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그런데도 뷜러는 충실한 바그너의 추종자로서 그의 작품을 열성적으로 지휘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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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그 삶과 음악
바그너의 삶과음악

                                                                              

 

코지마는 바그너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어. 그녀는 단순한 아내가 아니라, 바그너의 음악적 동반자이자 조언자였어. 코지마는 바그너의 작품을 이해하고, 그의 예술적 비전을 실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지. 그녀의 지원 덕분에 바그너는 더 창의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고, 그의 작품들은 더 풍부해졌어.

 

바그너는 코지마에게 여러 작품을 헌정했어.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지그프리트 목가'야. 이 곡은 그들이 결혼한 후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된 것이야. 바그너는 이 곡을 바이로이트의 집에서 코지마에게 서프라이즈로 연주해 주었어. 이 곡은 그들의 사랑과 헌신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야.

 

 

 

 
트립셴의 바그너 박물관
스위스 루체른 근교 트립셴의 바그너 박물관

         

 

 

 

 

 

 

코지마가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있어. 바그너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코지마의 지지와 조언 덕분에 이를 극복할 수 있었어. 그녀는 오페라 제작과 관련된 모든 일을 도왔고, 바그너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코지마와 바그너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을 넘어서, 서로의 예술적 성장을 도와주는 동반자 관계였어. 코지마는 바그너의 음악적 유산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그녀의 노력 덕분에 바그너의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어. 바그너의 음악을 들을 때, 그의 곁에서 항상 함께 했던 코지마의 존재를 기억하면, 그 음악이 더 깊고 특별하게 다가올 거야.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바그너의 삶에서 최고 반전은 루드비히 2세와의 만남이었지.

또한, 왜 니체는 바그너를 그토록 존경하고 숭배 했을까?, 바그너의 큰 흠결로 지적되기도 하는 히틀러로부터의 숭배, 등의 애기느는 다음 다시 올리도록 하고 오늘 글은 여기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