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1700~1827년 독일)
베토벤( 1700~1827년 독일)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까지 고전파 시대와
낭만파 시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한 음악가로 평가 받는다
알콜중독자인 아버지
그의 집안은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많았는데 특히 그의 아버지는
궁정의 테너 가수였다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으며 심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는 일찍이 아들의 재능을 알아차리고 제2의 모차르트를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혹독하게 음악 공부를시킨다
아들을 내세워 돈벌 궁리만 하는 아버지로부터 어린 베토벤은 큰 상처를 받고
반항적인 청년으로 자란다
하이든과의 만남
1792년엔 당시 유명 음악가였던 하이든의 눈에 띄게 되어 그의 권유로 빈에 정착하면서
하이든,살리에르로부터 음악적 감성을 전수 받는다
베토벤은 특히 음악 살롱에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그의 즉흥 연주가 너무 뛰어나
웬만한 유명 연주자들은 그 와의 만남을 꺼려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1800년 4월 초에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교향곡 1번을 공개 연주회로 초연했는데 이 공연은
특정 계층이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한 최초의 공연이었다
따라서 베토벤은 귀족 사회 뿐만이 아니라 서민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어가면서 인정받는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그전부터 귓병을 앓기 시작하는 베토벤은 1802년에는 청각을 거의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는 또 사랑의 실패로 인한 정신적인 시련을 겪게 되고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에 처하여 엄청난 불안과 고통에 시달렸다
현실적인 고통을 견디다 못한 그는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의 칩거하면서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때 ”하일리겐 슈타트의 유서”를 쓸 정도로 베토벤은 일생 일대의 최대 시련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는 죽음 앞에서 더욱 강해진다 이전보다 더 왕성하게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 베토벤은
새로운 음악 세계를 창조해 낸다
<제5 교향곡 운명>,< 제6 교향곡 전원>,< 바이올린 협주곡> 등과 같은 대 작품들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사랑의 실패한 베토벤은 더욱 무뚝뚝하고, 고집 센 사람이 되어 갔으며 결국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사랑했던 여자는 있었다고 한다
베토벤은 한 명의 조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온갖 정성을 쏟았지만 조카는 오히려 베토벤의 보살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계속 말썽을 피워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수많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만들어낸 음악이기에 그의 음악은 더욱 유명해졌는지도 모른다
수 많은 고통과 시련을 딛고 일궈낸 위대한 유산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도 그의 죽음을 늦출 수는 없었다
천둥과 번개가 빈의 하늘을 가득 채우던 1827년 어느 암울한 날 위대한 악성은 세상을 떠나고야 만다
이후에 작곡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쳐 악성(樂聖)이라고 불리는 불후의 작곡가이다
후계자라고 자청한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바그너, 브루크너 등 수많은 음악가들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실상 베토벤 이후의 모든 음악가들은 베토벤의 후계자라 할 수 있다 서양 음악사가 대충 정리되고 음악 교육의 커리큘럼이 확립된 현대에 와서는 전공이든 취미든 의무교육이든 서양 음악을 일정 기간 공부한 사람 중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작품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