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anz Joseph Haydn ] (1732년 ~ 1809년)
교향곡의 아버지이자 현악 사중주 곡의 어머니로 불리는 하이든은 엄청난 불량의 작품을 만든 다작 작곡가이면서 고전파 시대의 교향곡 형식, 즉 소나타 형식과 기악 편성법을 확립한 위대한 작곡가이다
빈의 방랑 생활
하이든이 이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된 것은 그의 극히 모범적인 삶과 연관이 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헝가리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소박한 목수였다
당시의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악적 환경에 익숙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어 8살에 빈에 있는 성 슈테판 대성당의 합창대원이 되면서부터 그의 음악인생은 시작되었다
17살 무렵에 변성기를 맞이하여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게 되면서 합창 대원을 그만 두어야 했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그는 1,761년 헝가리의 귀족 "안톤 에스테르 하지" 공작 후원하에 궁정 악단에 고용되면서 다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에스테르하지의 관현악단
헝가리 귀족인 에스테로 하지 공작은 음악을 매우 좋아하여 하이든이 마음 놓고 음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정신적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1766년에 악장으로 취임한 하이든은 궁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음악 행사의 책임을 맡게 되었으며 교향곡 45번 고별을 비롯한 많은 곡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하이든은 스스로 엄격한 궁정 생활에 잘 적응했으며 또한 단원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지만 아버지와 같은 인자함을 보여 주었으므로 단원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로 인해 파파 하이든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헝가리 귀족인 에스테로 하지 공작은 음악을 매우 좋아하여 하이든이 마음 놓고 음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정신적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1766년에 악장으로 취임한 하이든은 궁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음악 행사의 책임을 맡게 되었으며 아울러 그의 작곡 활동도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교향곡 45번 고별을 비롯한 많은 곡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1,790년 에스테르 하지 후작이 사망하자 잠시 악장직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교향곡”이라고 별칭이 붙은
12개의 교향곡은 영국사람들로부터 엄청난 환영을 받으며 대성공을 기록했다
고국과 영국에서 엄청난 명성을 얻은 하이든은 그의 마지막 걸작 두 편이 탄생하게 되는데
바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사계”이다
이 작품들은 하이든이 모든 음악적 기법과 종교심이 어우러진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교향곡 제45번 f샵단조 고별
제4악장에서는 단원들이 차례로 퇴장하면서 마지막에는 제1바이올린 2명에 의해 사라지듯이 끝난다.
하인과 악단원은 가족과의 동거가 허가되지 않았다. 하이든(오스트리아)은 이 제도에 대한 악원들의 불만을 이 곡에 우의적(萬意的)으로 표현했는데, 이 시도는 성공하여 니콜라우스 후작은 이튿날 전원에게 휴가를 주었다고 일컬어진다.
교향곡 제94번 G장조 놀람
큰 소리로 잠든 청중을 깨웠다는 일화로 유명한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은 하이든이 남긴 교향곡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번호로는 ‘94번’에 해당하는 이 교향곡은 하이든이 런던의 청중을 위해 작곡한 12곡의 ‘ 런던교향곡(제93번부터 104번까지) 시리즈 중 한 곡이기도 하다.
교향곡 제101번 D장조 시계
오라토리오 천지 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