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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베버

문학과 음악을 결합시켜 낭만주의 시대를 연 베버 #7

by salarygoodbye 2024.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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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버( 1786년~ 1826년 독일)


베토벤을 이어 독일 낭만파 시대를 연 선구자로서 34살 때인 1821년 오페라 <마탄의 사수>로 독일 국민 오페라의 새 지평을 열어 준 작곡가이다 지휘자로도 뛰어난 역량을 지녀 오케스트라를 조련했으며 근대 지휘법의 기초를 확립했다 지휘봉을 사용한 지휘를 본격화 시켰던 장본인이다


낭만주의 선구자 

 아버지가 작은 극단의 음악 악장이어서 어려서부터 여러 지방으로 순회 공연을 다니던 아버지를 따라다녀야 했다

 음악은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배워 정규적인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여러 지방의 자연과 음악을 접하는 기회가 많았으므로이 경험은 훗날 그의 음악 창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804년 18살에 부르스라우 극장의 악장으로 취임하면서 작곡가로서 그리고 유능한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지휘자가 되어 많은 주자들로부터 불평이 심했다고는 하나 그 당시로는 아주 혁신적인 지휘법을 구사하여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지휘자로 인정받았다


오페라 <마탄의 사수>,<무도회의 권유>

 그는 문학을 오페라로 표현하기 위한 시도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오페라 <마탄의 사수>이다  이 작품이  대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높이게 되었으며 

베버는 기악국에도 놀라운 업적을 남겼는데 피아노 곡 <무도회의 권유>,< 클라리넷 5중주>와 같은 낭만적인 기악곡을 만들었다

 

 특히 <무도회의 권유>는 베버가 가장 사랑하던 부인 “까롤리네”에게 헌정한 피아노 독주곡이었다

 본래 제목은 “ 화려한 론도”였으며 당시 유럽 귀족의 자녀들이 앞다투어 연습할 정도로 전 유럽에 유행했다

 베버가 죽은 후 “베를리오즈”가이 곡을 관현악곡으로 변경했는데 이것은 더욱 유명해져 지금까지 가장 사랑받는 소품이 되었다

 이렇듯 다방면에 재능을 드러내 보였지만 가장 뛰어난 분야는 오페라였다

후에 영국으로부터 흥행 요청을 받고 런던으로 건너가, 1825년 부터 1826년에걸쳐 오베른 을 완성 했으며 1826년 6월 5일 런던에서 타계한 그는 대부분 가극 작곡에 힘썼으며 많은 명곡을 남겼다

 특히 독일풍의 낭만파 가극을  창설하여 훗날 바그너를 낳는 기초를 쌓은 공적이 크다

 가극 외에 피아노 곡과 오르간 곡도 만들었는데 특히 피아노는 그 당시 인류 연주가로서 명성을 떨칠 정도였으며 피아노 작품에도 뛰어난 곡이 많다

 

Carl Maria von Weber